작성자: 김경민
업로드: 2025.1.1
코다,농인의 삶을 깊이 들여다보는 5권의 책
독자분들도 이미 아시다시피, 코다는 청각장애인을 부모로 둔 청인 자녀로, 이들은 청각장애와 농문화 속에서 자라며 그 과정에서 많은 시행착오를 겪습니다. 코다로서의 삶은 양쪽 세계를 연결하는 다리이지만, 그만큼 갈등과 고민을 동반하기도 합니다. 세 권의 책 《코다 다이어리》, 《나는 코다입니다》, 《들리지 않는 어머니에게 물어보러 가다》를 통해 이번 매거진에서는 코다의 고민과 삶을 이해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려합니다. 또한 농인과 그 농인을 바라보는 청인의 시선을 다루는 도서 《영혼에 닿은 언어》, 《수어: 손으로 만든 표정의 말들》도 소개해 새로이 생각해 볼 거리까지 챙겨보려 합니다. 그럼, 베로니크 폴랭의 인용문으로 시작해보겠습니다.
“나는 두 개의 언어로 말하고, 두 개의 문화 속에서 살아간다.
단어, 말 그리고 음악이 있는 '소리'의 낮.
그리고 몸짓, 손짓 그리고 시선이 오가는 '고요'의 밤이 존재한다.
말과 수어, 두 세상으로의 항해.
두 개의 언어.
두 개의 문화.
그리고 두 개의 세상이 존재한다.”
-베로니크 폴랭
《코다 다이어리》 – 베로니크 폴랭
이 책은 매거진 영화 편에서 소개된 코다(2021) 영화의 원작 도서이기도 합니다. 베로니크 풀랭은 농인 부모님과 함께 살아온 유년기와 청소년기에 겪은 생각과 경험을 섬세하게 풀어냅니다. 우리는 각자의 세상을 살아가는데요, 베로니크는 자신이 살아온 세상의 내면을 독자들에게 들어내보이고 우리는 그 세상을 엿보며 당사자가 아닐지라도 코다로서 자라온 저자의 세상을 이해할 수 있는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베로니크와 어머니의 유대감과 유년시절의 페이지가 기억에 남는데요, 그 아름다운 내용을 아래에 남겨보겠습니다.
내 서툰 수어를 보고 엄마가 웃었다. 엄마는 양손 엄지를 배에 대고 나머지 손가락을 엄지에 포개며 몸을 약간 숙였다.
배고파?
이것이 엄마와 아빠의 세상에서 대화하는 방식이다.
맞아요, 엄마. 나 배고파요.
목이 말랐다. 나는 엄마를 찾았다. 걸음마를 갓 시작했을 무렵이었다. 비틀비를 주방까지 걸어가다가 그만 균형을 잃었다. 엄마가 순간적으로 돌아보고는 가까스로 나를 붙잡았다.
아무 소리도 못 들었을 텐데.
엄마는 항상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감지했다.
《우리는 코다입니다》 – 이길보라
다음은 한국 도서로, 우리나라의 다큐멘터리 감독 이길보라는 자신의 코다 정체성을 바탕으로 한 경험을 기록하며, 농인 부모와의 관계와 농문화에 대한 깊은 애정을 담아낸 책을 펴냈습니다. 이 책에서는 이길보라가 코다로서 살아오며 겪은 쉽지 않았던 삶의 과정이 잘 드러납니다. 아직 한국사회에서 ‘농인’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실정입니다. 이 도서를 통해 독자로서 농인과 코다에 대한 인식과 지원에 대한 필요성을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게 합니다.
엄마는 스스로를 농문화에 속한 농인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했지만, 세상 사람들은 그것을 ‘장애’라고 불렀고 때로는 ‘병신’, ‘귀머거리’라고 부르며 비웃었다. 나는 그 사이에서 정체성의 혼란을 겪었다.
내가 바라본 엄마, 아빠의 세상은 너무나 반짝였지만 그것을 설명해내기에는 두 세상의 언어가 확연히 달랐다. 시각을 기반으로 한 수화언어와 청각을 기반으로 한 음성언어 사이에는 언어와 문화의 차이뿐만 아니라, 차별과 편견의 벽이 존재했다.
그래서 그 둘을 오가는 일은 고단했고 종종 외로웠다.
- ‘코다라는 언어를 갖다’(이길보라), 122쪽
《들리지 않는 어머니에게 물어보러 가다》 – 이가라시 다이
마지막으로, 이 책은 일본의 대표적인 코다 작가 이가라시 다이가 농인 어머니의 삶을 취재해서 쓴 에세이입니다. 1950년대에 가족 중 유일한 농인으로 태어난 어머니가 농학교에서 만난 아버지 고지와 결혼해 주변의 우려 속에서 자신을 낳기까지 30여 년에 걸친 시간을 에세이 형식으로 독자들에게 들려주는데요. 작가가 ‘들리지 않는 사람들’과 ‘들리는 사람들’이 차이에 갈등하면서도 공생의 방법을 모색하며 살아온 날들이 펼쳐집니다.
〈내 귀는 들리지 않아.>
아직 두 살도 되지 않은 나에게 어머니는 자신이 농인이라는 사실을 전했다. 그리고 천천히 조금씩 수어를 가르쳤다. '엄마', '아빠, 어째서'
'맛있어" 같은 말들을, 비로소 나는 어머니, 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내 사고와 감정의 회로가 복잡해지는 속도를 수어 습득 속도가 따라잡지 못했다.
"전하고 싶은 말'과 '전할 수 있는 말'이 점점 분리되었다. 몇 번이고 나는 어머니, 아버지와
'같아지고 싶었지만 우리 사이에는 넘어갈 수 없는 선이 있었다.
-이가라시 다이
《영혼에 닿은 언어》 – 김유미
현재 한국농문화연구원을 운영하며 MBC 문화방송에서 수화 통역사로 일하는 저자는 농문화와 농인에 대해 알리며, 특히 농인과 장애인을 장애를 ‘극복’해야 할 존재 또는 비장애인들이 시혜적으로 바라보며 도움이 필요한 존재로 바라보지는 않는지 꼬집습니다. 특히 저자는 ‘헬렌켈러 피로 증후군’ 이라는 용어를 독자들에게 제시하는데요. 장애를 극복해 ‘비장애인’이 속한 주류 사회에서 살아가고 대단한 성과를 내는 성공신화를 만들어 ‘인간승리’를 하는 것이 장애인의 목표이자 성공이라고 말 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이른바 장애를 극복해 ‘비장애인’과 다름 없이 사는 장애인은 감탄과 함께 흐뭇한 시선으로 바라보거나 그렇지 않은 장애인, 즉 농인은 도움을 주어야 한다는 시혜적인 시선, 이 두 가지 시선으로 보고 있지 않은지 생각해보게 하는 책입니다.
안타깝게도 이 땅의 농인들은 ‘헬렌 켈러의 길’을 강요당하며 지금의 세기를 살아내고 있다. 그러나 그 길은 머리에 돌덩어리 하나를 올리고 지내는 것 같은 묵직한 피로감을 농인들에게 줄 뿐이다. 진실은 이렇다. 그들 모두에게는 각자의 길이 있고 그 길을 걸어갈 권리가 있다.
청각장애를 극복하지 않아도 자신을 위한 꿈을 꾸고 그 꿈을 펼쳐가는 삶. ‘삼중고를 이겨내는 인생’을 위해 자신을 부정하고 괴롭히는 일상이 아닌, 지금의 내 모습을 그대로 가진 채 행복을 추구하고 성취할 수 있는 날마다의 일상과 인생을 원한다. 농인, 그들은 자신을 극복해야 할 존재가 아닌, 청인들처럼 자신의 삶을 누릴 권리가 있는 존재다. 그들은 자신이 ‘제2의 헬렌 켈러’가 아닌 ‘행복한 농인’이기를 원한다.
_4. 청인의 세상에서 농인으로 살기 에서
《수어 : 손으로 만든 표정의 말들》 – 이미화
청각장애인이 모두 수어를 쓰는 것은 아닙니다. 수술을 통해 온전하진 않더라도 인공와우와 보청기를 통해 소리를 듣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농인은 수술을 하지 않고 수어를 쓰는 농 정체성을 택했습니다. 이들이 수술을 통해 소리를 듣는 것을 ‘포기’ 한다고 생각하나요? 이것은 ‘오디즘’ 이라는 청능주의로, 청인이 농인보다 우수할 것이라는 믿음으로 어떻게든 ‘듣는 사람’으로서 살아가는 게 맞다는 생각일 수 있습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오디즘’을 알리며 농인을 듣는 것을 ‘포기’한 사람이 아닌 하나의 다른 세상을 온전한 의지로 ‘택’한 것이라는 새로운 시각을 깨닫게 합니다.
모든 청각장애인이 수술을 감당하면서까지 듣기를 희망하는 건 아니라는 것, 수술을 받은 사람 모두가 소리에 만족하는 건 아니라는 것, 장애를 치료하거나 제거하는 방식으로 당사자가 원하지 않는 해결책을 강요하는 것 또한 차별이라는 것. 내가 속한 사회의 값을 기준으로 그보다 덜하거나 더하면 완전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는데, 한민과 수지가 걷는 산책길은 그 자체로 완전한 세상이었다. 불완전한 건 나의 인식 수준이었다. 오디즘AUDISM 은 선량한 얼굴을 하고 내 안에 숨어 있었다.
-- 「왜 내가 그걸 원할 거라고 생각하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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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문헌